쿠바 개요
*국명 :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
*면적 : 11만 km2(남한의 1.1배)
*인구 : 1,120만명(ABANA 220만명/ 2016)
*1인당 GDP : 약 7,000불 명목상(12,671불/ *2016 EIU 추정치)
*인종 : 백인 64.1%, 혼열(메스티소, 물리토) 27%, 흑인 9.3%
*종교 : 카톨릭 85%,
(*자료출처 : 외교부 홈피 국가/ 지역)
여기서는 '쿠바의 역사, 경제, 사회, 문화, 의료 등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한
'위키피디아' 자료를 바탕으로 좀 깊게 알아보기로 한다.
쿠바 공화국(República de Cuba), 줄여서 쿠바(Cuba/ 꾸바)
쿠바는 카리브해의 카리브제도에 있는 가장 큰 섬과 인근 섬들로 이루어진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 이며, 수도는 아바나, 공용어는 '에스파냐어'이다.
윈드워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히스파니울라 섬에 있는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케이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케이만 제도와 자메이카가,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미국의 '플로리다 주'가 있다.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포함되지만, 광의의 중앙아메리카에도 포함된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뒷마당」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공산주의 정권을 기념하여 「카리브에 떠오르는 붉은 섬」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참여한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래 현재까지 공산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경제의 어려움을 '자립 경제 체제' 로 버티면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었으나
2014.12.18 오바마 정부시절 양국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 이후 다시 이전으로 회귀한듯...
1961년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었으며,
쿠바 섬은 '카리브해의 진주' 라고 불리면서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쿠바의 역사
# 식민지 시대
쿠바에는 수천 년 전에 타이노족 등 원주민이 농경 등을 영위하고 있었으나,
15세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쿠바에 건너온 이후 19세기까지 '스페인 식민지' 로 있었다.
16세기 초부터 스페인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수입하였다.
19세게 까지 쿠바에 수입된 흑인 노예의 수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쿠바와 미국 간의 긴밀성은 쿠바의 역사에 매우 많은 영향을 끼쳐 미국은 끊임없이 쿠바를 지배하려고 넘보았다.
1898년 미국의 메인호가 아바나 항에서 정박 중에 폭발한 사고(후에 미국의 자작극으로 확인됨)을 구실로
미국이 일으킨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
1903년에는 관타나모에 미국 해군기지가 설치되고, 쿠바의 중추적 기능을 미국 자본이 장악하는 등
쿠바는 '미국의 사실상의 식민지'가 되었다.
# 군인들과 바티스타의 독재
1930년 마차도의 쿠데타 이후로, 10여 년간 계속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1940년 쿠바 자유당의 '바티스타'는 선거로 정권을 획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삶의 질은 향상되었으나 빈부 격차도 극심해졌다.
1952년 에는 군부의 지지를 받는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얻어냈고
바티스타에 대항한 1956년 바르킨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 공산주의 독재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하여 쿠바는 공산화되었다.
이후,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였으나 실패,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쿠바 공산화 때부터 1993년까지 쿠바의 독재정권을 피하고자 120만 명의 쿠바인이 쿠바를 탈출 하였다.
1970년대 쿠바는 볼리비아, 앙골라 등의 공산당 군벌들을 원조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해당 국가의 정부군을 지원하였다.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쿠바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1993년에는 일부 민간차원의 미국과의 교류를 허용하였으나 미국은 금수 조치로 쿠바에 제재를 가했다.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여 수감된 양심수가 500명에 이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침해로 비난받아 왔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사촌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새로운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계승했으며,
2014년 12월 18일, 쿠바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했다.
2016년 11월 28일에 마침내 '피델 카스트로'는 90세의 나이로 사망, '산티아고 데 쿠바'에 묻혔다.
# 쿠바의 정치 체제는
우리 한국과는 아직 수교를 맺고 있지 않았으나 현재 주 멕시코대사관이 쿠바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2005년 KOTRA 무역관이 개관하였고, 현재 연간 약 5,000여 명이 쿠바를 방문하고 있음.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60년에 수교하였다.
# 쿠바의 경제
쿠바 정부는 정부가 대규모로 통제하는 '계획경제'를 조직하는 데에 공산주의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이론적으로는 '계급 특권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공산당원 또는 정부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우대가 존재한다.
교통, 직업, 주거, 대학 교육 그리고 보다 우수한 보건 혜택을 받는 것은 정부 또는 공산당 내에서 신분을 가져야 가능하다.
1980년대 말부터 쿠바의 국가 운영 경제에 대한 소련의 보조금이 고갈되기 시작하였다.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쿠바에게 소련은 수출의 보호무역 시장이었고 많은 경제 원조의 주역이었다.
소련은 쿠바산 사탕수수를 시장보다 높은 가격에 사 주었고 석유를 시장보다 낮은 가격에 쿠바에 공급해 주었다.
한때 쿠바가 소련으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6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 보조금이 사라지자 쿠바의 경제는 급속한 경기불황에 직면하였다.
쿠바는 1인당 실질 GDP가 약 2만 달러에 달하지만, 엄청난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쿠바 페소화가 비정상적으로 자국내에선 고평가되어 있고, 국제 화폐 기준에서는 매우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수치이다. 전문가들은 쿠바의 1인당 명목 GDP를 약 7천 달러 로 예상하며,
쿠바 내에서 생산되는 품목의 경우는 싼값에 거래되지만 수입 물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 상태이다.
소련의 붕괴 이후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쿠바는 소련의 원조의 종결을 벌충하여
식량, 소비재, 서비스 산업의 부족을 완화시킬 '제한적인 자유시장' 수단을 취하였다.
특히, 1996년 관광산업은 사탕수수 산업을 제치고, 쿠바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큰 자원이 되었다.
쿠바는 최근 10년간 카리브해 지역의 관광산업에 있어서 시장점유율을 3배나 올려놓았다.
이것은 관광산업의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한 결과이다.
쿠바의 경제에서 기본은 '사탕수수' 생산이다. 사탕수수 재배 면적은 부침땅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사탕수수는 수출총액의 80~85%를 차지한다. 설탕 수출량의 4분의 3이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사탕수수의 생산은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하며, 시가(Ciga)는 세계 최고품 담배로 주요 수출품이다.
# 사회
국내 총생산액의 10%를 투자하는 '무상교육', 7%를 투자하는 '무상의료'시스템은 오직 공공선의 목적으로 굴러간다.
쿠바에는 학생이 10명 이하인 학교가 2천여 개에 달하고, 의사들의 수준은 미국에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쿠바 국민은 전체가 배급수첩을 소지하고 있으며, 매일 배급을 받는다.
과거에는 외국의 초청이 없는 한 해외로 출국할 수 없었으나 최근 여권만 있으면 출국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 나라는 500여 년 전에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인디오를 학살했기 때문에
백인 정착자와 흑인 이주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주민의 인종 구성은 물라토가 37%, 유럽계 백인이 51%,
흑인 11%, 중국계 1% 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외에도 메스티소가 있다.
쿠바 정부는 인종별 통계는 인종차별로 연결된다는 이유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 교육
피텔 카스트로는 쿠바가 미국의 반식민지가 되었던 것은 미국의 선전을 국민들이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국력을 '교육에 집중' 하였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 정권은 교육 사회 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 비율을 강화하고
관련 예산이 국가 예산의 16%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농촌의 문맹률이 크게 하락하였고 대학을 포함한 모든 교육은은 무료로 제공한다.
유치원을 거쳐 예비학교 1년,초등 6년, 중학교 3년은 의무교육(obligatorio)이며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진다.
200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문자해독률은 99.8%이며,
이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최고 수준이다.
또한 쿠바는 학교 교육에서 스포츠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야구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필수과목으로 도입했고 쿠바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 의료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쿠바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 의료'를 시행하였다.
일차의료기관(Primary Health Care)을 중시하는 의료 제도를 채택하여
독특한 사회 복지 정책과 함께 "쿠바 모델"로 유명하다.
쿠바에는 '가정의 제도' 가 있어 지역 주민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등 예방진료를 담당한다.
가정의사는 의사가 환자를 방문하여 돌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 인권
쿠바 정부는 고문, 자의적인 구금, 불공정한 재판 그리고,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형(일명/ 엘 파레돈 "El Paredón") 등을
포함한 수많은 인권 유린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휴먼라이트 워치'는 이 정권이 거의 모든 정치적인 반대를 탄압하고
표현·회합·사생활·정치적 운동의 자유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쿠바 국민들은 정부 허가 없이는 쿠바를 떠나거나 돌아올 수 없다.
쿠바 정부는 북한과 비슷한 광범위한 검열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검열은 쿠바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을 제한한다.
언론매체는 정부에 의해 통제된다. 쿠바의 매체는 '공산당의 혁명 지도부'에서 관할하며,
당국은 인터넷을 "21세기의 큰 질병"이라 부른다. 컴퓨터 소유가 금지되어 컴퓨터 보유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터넷을 이용할 권리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허가되며, 이들도 감시받는다.
불법적인 인터넷 연결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 쿠바 음악은
스페인계와 아프리카계의 음악이 융합해 태어난 것을 기반으로 여러 요소가 서로 섞여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라틴 음악의 중추적인 존재이다. 미국의 재즈 등과 함께 20세기의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쿠바 음악은 스페인의 기타와 아프리카의 북을 조합한 요루바계 문화의 영향이 강한 룸바와 손(Son)이 있다.
음악은 유로쿠바 음악, 아바네라(Habanera)와 아프로쿠바 음악인 룸바, 볼레로, 맘보, 차차차 등이 있다.
19 세기에 프랑스의 비제가 '아바네라' 리듬을 받아들인 때부터 쿠바 음악이 세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
쿠바 음악은 먼저 1930년에 송(son)이 미국에 소개되었고, 그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로 확산되었다.
(*자료출처/ *글- 위키피디아 참조 편집/ *사진- 필자 직접 촬영)
# 산티아고 데 쿠바의 혁명 조형물
쿠바의 주요 인물
#. 호세 마르띠/ Jose Marti(1853~1895년)
- 1853년 쿠바 에서 출생, 시인, 저널리스트, 독립 투사
- '혁명과 저항'을 국가적 이념으로 삼고 있는 쿠바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받는 인물.
#. 풀헨시오 바띠스따/ Fulgencio Batista(1901~1973년)
- 오늘날 쿠바를 민든 가장 중요한 인물이 피델이나 체게바라가 아니라 바띠스따 일수도...
- 1933~1959년까지 26년간 대통령 또는 막후 권력자, 미국과 결탁, 쿠바를 향락의 나라로 만드는데 일조
#. 페델 까스뜨로/ Fidel Castro(1926~2016년)
- 쿠바 올긴주에서 출생, 1945년 아바나 대 졸업, 변호사,
- 1953년 바띠스따의 쿠데타에 반대, 몬카다 병영 기습, 실패 체포, 이후 멕시코로 망명.
- 1955.12.2 동료 82명과 함께 그린마호 타고 쿠바상륙,
- 1959년 사회주의 국가 수립, 2016년 11월, 90세로 사망
#. 체 게바라/ Che Guevara(1928~1967년)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공부, 1955년 멕시코에서 피델 만나 쿠바 혁명에 동참
-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사회주의 혁명에 노력, 1966 볼리비아서 체포, 1967.10월 총살 당함
- 중남미인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던 평등에 대한 헌신으로
현재는 중남미를 넘어 전세계적인 '저항의 아이콘' 으로 추앙받고 있음.
(( 체 게바라 명언 ))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너 자신을 강하게 하라!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를 향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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