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LIFE/Marathon

02동아서울 - 마라톤과 첫 인연을 맺었던 동아(02/03/17)

 

【2002동아수기】마라톤과 첫 인연을 맺었던 동아마라톤(1)


▷ 동아와의 인연을 맺었으나 기록과는 거리가....


만 2년전 장소를 경주에서 서울로 옮겨온 첫 대회인 2000.3월 동아에서 부상으로 천신만고 끝에 마라톤을 첫 완주(*4:30:31)했다.

 또한 2001년엔 연습부족으로 기록도전을 포기하고 전주군산 대회를 위한 풀코스 lsd(*4:20)를 하였다. 그것도 특이한 5km주행후 5분간 워킹 하는 ‘아사히 에리코’의 훈련법으로....


금년에도 부상과 훈련부족이란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Sub-4도우미를 자청  했으나 사정에 의해 완주하는데 급급.....(*4:07:37)


이유야 어찌 됐던 동아에서 나의 기록과는 인연이 없는 듯하다. 더구나  몸 컨디션이 봄에는 항상 저조했다.  동아서울대회 세 번 출전한 것 중에 한번도 4시간 안에 들어와 본적이 없었고 또한 항상 마라톤 벽을 만나 어려운 레이스를 펼쳐왔다. 여기서는 나의 아홉 번째 마라톤 도전기를 대충 기술해보기로 한다.


 올해의 코스는 작년과는 다소 변형된 코스에서 열렸으며, 국내 첫 풀코스 단일종목으로 경향각지에서 1만 2천여명이 참가했다. 완주자는 8,067명(남 7,652명, 여 415명)으로 완주율이 역대 대회중 가장 저조한 66.8% 였다고 한다.

 

▷ 2002.3.17, 구름후 맑음, 5도∼12도, 바람 다소 강함


광화문 세종로 대로엔 1만2천여 건각들이 운집해있었다. 대포소리와 함께 사람의 물결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타트 라인은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 도로였다. 타임워치를 누르고 나는 달림이들의 물결속에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한가운데는 충무공이 큰 칼 옆에 차고 서서 반라(半裸)의 모습으로 백주대로를 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뜀꾼들을 호위하고 있는 듯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남대문을 향했다. 서브-4를 목표로 같이 달리기로 약속한 검푸의 백곰님(곽*효님의 애칭)은 출발직전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대신 검푸율사(이*현님)와 함께 동반주 하기로 하고 발을 맞춰 달려본다.


국보1호인 남대문을 지나 숱한 애환이 서려있는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사를 뒤로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느 때 같으면 주변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도 없었을 텐데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남영동 근처에 이르렀을 즈음 선도차를 앞세운 외국인 초청선수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뒤이어 마스터스 선두주자들도 따라서 달려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얼굴이 유난히 까맣게 그을린 한 여자선수도 보였다. 그녀는 한국여자 최고기록보유자인 삼성의 권은주 선수였다. 이번에 기록 좀 낼 것을 기대해본다.


용산 전화국근처의 반환 점을 돌아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뱃살과의 전쟁을 벌리고 있으나 아직은 배 부러더스의 한사람인 검푸 율사님은 잘도 따라온다.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 60∼80년대 한국 제1의 번화가 명동! 「명동블루스」

 

다시 국보 제1호인 남대문(崇禮門)을 좌측으로 끼고 우회전하여 구 서울시경과 한국은행본점을 거쳐 명동입구에 이르렀다.


명동에 대해 잠시 추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금은 강남에 1위 자리를 내어줬지만 60∼80년대엔 한국 제1의 번화가였다.


명동을 주제로 한 노랫말도 많이 있다. 즉 <명동 불루스>, <명동 나그네>, <비내리는 명동거리> 등등... 유행가의 노랫말이야말로 그 시절의 애환을 가장 잘 읽을 수가 있다.


돌이켜보면 70년대초 명동과 무교동, 충무로 등지로 무슨 큰 할 일도 없으면서 자주 드나들곤 했다. 약속장소를 항상 명동에 위치한 DJ가 있는 음악다방이 아니면 음악 감상실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밤의 문화에 익숙했다. 밤이면 통기타 가수들의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감상하며 늦은 밤까지 명동 거리를 신나게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젊음이란 역시 좋았다. 그러나


 

“내 청춘은 다 어디 가고 반백이 웬말인고......”

“내 청춘을 돌려다오”라며 허공에 소리쳐 보고싶다.


다시 시선을 주로(走路)로 돌려본다. 을지로 입구, 종각에서 종로를 따라 동대문을 향했다. 종각 앞이 10km지점 급수대에서 물 한 컵을 들이켰다. 이곳부터는 거의 작년코스를 따라 달렸다. 길거리엔 파이팅을 외치며 환영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세파에 찌든 모습으로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달리는 주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분들의 눈에는 우리 달림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신설동을 지나 답십리 근처의 15km 급수대에서 물을 먹고 돌아서는데 이* 님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빨간 모자를 눌러 쓰고있는 그를 찾았으나 많은 달림이들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17km지점부터 처음으로 왼쪽다리 허벅지 뒷부분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 어느 독일인과의 동반주!

 

잠실대교에 이르니 강풍이 몰아쳤다. 행여 모자가 날아 갈 것만 같아 모자를 벗어 허리춤에 달고 뛰기도 했다.


잠실 사거리를 지나 천호동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 상체를 몹시 앞으로 꾸부리고 달리는 어느 외국인을 만났다. 어디서 왔으며, 풀코스는 완주회수와 최고기록 등을 물어봤다. 그는 62세로 중부 독일 뷔르츠부르크 근교에 살고있다는 독일인이었다. 이름은 벌써 잊어버렸다.


그의 최고기록은 3시간 36분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왔다고 하기에 서투른 독일어로 몇 마디 물어봤는데 그도 나를 무척 반가워했다. 그분이 급수하는 동안에 나는 그와 헤어졌다. 잘 완주하기를 빌어본다.


▷ 검푸의 인사랑과 방망이 사탕을 쭉쭉 빨며 대로를 질주!


 뒤에서 누가 “고독! 선배님!”라며 불렀다. 검푸의 <인사랑> 인*수님이었다. 정이 많아 그의 이름도 인정수라고 지었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한참동안 동반주했다. 그와는 금년 들어 두 번의 장거리 종주산행을 같이하면서 그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꼈다. 체중이 많아 스피드는 다소 부족하지만 지구력이 무척 강하다는 사실을 산행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스피드와 무관한 울트라마라톤이 체질에 맞을 듯.....


그는 달리는 도중 망방이 사탕한개를 내게 내밀었다. 그것은 방망이사탕이었다. 작년 춘천대첩 때 후반에 마라토너 강(*훈련부장의 애칭)이 물고 뛰어 효과를 봤다는 것. 오늘 난 기록낼일은 없지만 그가 주는 성의를 봐서 시험삼아 한 개 받아 입에 물고 달려봤다. 호흡하기에 다소 불편했으나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미지수. 제대로 한번 달려보지도 못했으니....


길동사거리를 지나 올림픽공원(32km)근처에서 두 번째 다리통증이 재발되었다. 검푸 유니폼을 입고 걷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민망했다. 버스 정거장 뒤편에 숨어들어 스트레칭을 하며 약간의 휴식을 취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직선 주로를 따라 달림이들의 물 결속에 강한 맞바람과 싸웠다. 가락시장, 수서, 학여울역을 지나 마지막으로 힘드는 탄천교의 오르막을 지난 내리막길에 이르렀다.


40km 급수대를 저만치 앞에 두고 다시 다리 통증이 재발되었다. 잠시 길가에서 다리를 만지며 앉았다 섰다를 해봤으나 통증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마치 풀 코스 첫 도전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한동안 걷는 것조차도 불편했다.


정신력이 떠난 마라톤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오늘 마라톤은 힘들면 그냥 포기해도 누가 말릴 사람 없건만 내가 힘들게 왜 뛰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2000년 3월 이 대회를 달리고 나서 "내 사전엔 마라톤에서 <포기>란 단어가 없다"라고 마라톤 첫 수기에서 나 자신과의 약속했던 말이 생각났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잠실 메인 스타디움의 피니쉬 라인을 밟았다.


▷ 오늘 마라톤 레이스가 남긴 교훈


오늘 마라톤은 목표가 불분명했다.

마라톤에서 목표가 없다는 것은 의미의 상실이다.

 

당초 자원했던 서브-4 도우미 역할도 출발전 백곰의 이탈로 실패로 끝났다. 율사 이*현님까지 15km지점에서 탈락....


천천히 달리더라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30분정도 늦게 달리는 것은 힘드는 정도가 최고 기록수립 때와 비교 거의 80∼ 90% 정도의 힘이 들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힘을 덜 들이고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기록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달리거나 아니면 5km 주행 후 5분간 워킹(급수, 스트레칭 시간 포함)이 가장 편한 완주방법인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의 레이스는 힘드는 레이스였다.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한 레이스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아홉 번의 마라톤 완주중 성공적인 레이스는 단 두 번밖에 없다. 즉 마라톤 벽을 만나지 않고 전후반 고른 페이스를 유지하며 또한 좋은 기록을 달성한 레이스를 말한다.


매번 풀코스를 달리고 난 후의 느낌이지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  “충분한 훈련이 없는 기록달성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레이스의 실패원인 분석

첫째,  목표의식 결여

둘째, 2/3 한남정맥 종주중 발목부상으로 동계훈련 절대부족

셋째, 영양상태 부족

넷째, 노조파업대비 야근 등으로  컨디션 최악


보잘 것 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2.03.22

고독한 러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