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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Marathon

02경산하프 - 88열차를 타다(02/11/10)

 

 

 

 

【02경산하프후기】생전 처음으로 타본 88열차(1)


◑ 서언

참가소감을 피력하기에 앞서

저의 2002년 목표로 세웠던 하프 1시간 30분 벽을 깬데 대해

축하해주신 여러 검푸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실 풀코스 이외는 참가수기를 거의 쓰지 않았으나 중앙대회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하프 기록갱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힘들게 달려 개인최고기록을 수립하게 되어 소감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경산마라톤 참가는 사실 어렵게 추진 되었다.

대회 몇 주전에 단체 참가단 모집을 했으나 신청인원의 부족으로 유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시니어 검푸님들의 권유로 가까스로 성사.

아쉽긴 했으나 20명이 동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11월 9일 저녁,  경산시 외곽에 위치한 숙소(*상대관광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고

넓은 방에 10여명의 많은 사람들이 동숙하게 되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했다.


다른 룸에서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 온 달림이들이

 밤새 얘기꽃을 피우느라 다소 소란하기도 했으나,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밤 11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헌데, 저녁으로 우거지를 많이 넣은 추어탕을 먹어서 그런지

밤새 뱃속이 좋지 않아 꼬르락~~~ 거리며 연신 방귀만 나왔다.

웬 소피는 그리 자주 마려운지....30분에 한번씩 화장실에 들락날락......

나는 본래 잠자리를 바꾸면 잠을 깊이 못 자는 타입인데 잠이 쉽게 올 리가 없었다.


밤새 이렇게 뒤척이다 보니 벌써 6시!

훈련단장의 기상 신호와 함께 온천사우나에서 샤워를 하니 그나마 피로가 가신다.


대회장으로 가는 도중 오늘 달리게될 코스를 버스로 답사했다.

약간의 오르 내리막은 있으나 주변환경이 마라톤 하기엔 더없이 좋아 보였다.

 

더구나 오늘의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수년동안 마라톤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였던 것 같다.

바람도 거의 없이 기온도 15도 이하로 적절한 듯....

 

오전 9시10분경,

대회출발장소인 영남대 캠퍼스안에 버스를 주차시키고 모두들 워밍업에 들어갔다.

한없이 넓은 캠퍼스 규모에 비해 오히려 3천여명의 달림이들이 적게만 보였다.

 

 

◑ 금년 마무리 농사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드디어 출발의 카운트 다운!

 

열, 아홉.........

셋, 둘, 하나, 출발!

하프참가자가 980여명에 불과해 신의발과 관우, 나 셋이서

함께 선두그룹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관우는 일주일전 풀코스를 뛴 사람 같지 않게 몸이 가벼워 보였다.

신의발이 앞으로 나서고 나와 관우는 약 2km 가량 동반주를 한다.

관우의 스피드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아

먼저 가라고 하고 나는 약간 뒤로 처진다.

 

지난주 중앙하프에서의 초반 첫 5km구간을

1분이상 오버, 후반에 어려운 고비를 만나

30분벽을 돌파하는데 실패한 경험이 있어 조심조심 달려본다.

나의 바로 앞엔 “서부산마라톤클럽(서마클)”의 유니폼을 입은

여성주자 두 사람이 세련된 폼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두 분은  여자 2,3위에 입상한 이*연님과 장*화님).

  

5km통과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21분 31초!

아주 적절한 속도였다.

몸 컨디션을 점검했으나 크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다만 코감기로 코가 좀 막혀 연신 콧물이 나와

호흡에 약간의 지장은 있었지만......

  

거의 3km가량 어느 여성 선두주자와 같이 달렸다.

클럽소속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으나 거친 숨소리가 조금은 힘들어 보였다.

거리에 나와 있던 자원봉사자들이 여자 1등 화이팅을 외친다.

약 7km 지점에서 나와 30여 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며

앞에서 달리던 신의발 님을 힘들이지 않고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하프의 고수님이 왜 이렇게 늦어” 하며 물어봤다.

 

그는 호흡이 비정상이라 빨리 달릴 수 없다고 했다.

우리클럽에서는 강호고수 다음으로 하프의 기록보유자가 아닌가!

탄천에서 달릴 땐 출발하자 말자 멀리 사라져 버려 그의 뒷모습만 보아 왔는데......

그와 같이 반환점으로 향하고 있는데 관우가 벌써 돌아 나왔다.

 

“관우 화이팅!”을 외쳐본다.

그와의 거리 차는 벌써 200~300m 이상.....

 

속도를 좀 더 올려 본다. 신의발님이 뒤로 처지려한다.

나는 같이 달리자며 다시 속도를 조금 줄였다.

이윽고 10km표지판이 나타났다. 21분 34초로 이븐 페이스였다.

이렇게 이븐 페이스로 달려 본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웬지 30분벽은 깰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최적의 동반자 - 선의의 경쟁자와의 만남

 약간의 내리막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으나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의 경사도였다.

 

반화점을 돌아오는데 많은 검푸들의 환호를 받으며

달리니 힘이 더욱 쏟아 났다.

이제 다시 자인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기 직전

신의발님을 뒤로하고 가속 페달을 밟아본다.

 

바로 앞엔 나와 스피드가 비슷한 한 달림이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등엔 “서부산마라톤클럽 김충기”라고 쓰여져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어 본다.

“같이 달립시다.”

“하프기록이 얼마 인지요?”

 

그는 1시간 35분이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 그는 그의 기록보다 훨씬 빨리 달리고 있는 듯....

 

그와 나는 12km지점부터 16km지점에 있는 급수대 까지는 나란히 달렸으나

그 이후부터 그는 나를 조금씩 추월해 10여미터 앞에서 계속 달리고 있었다.

 

나는 내심 “좋다. 오늘 저 사람하고 한번 붙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19km 지점의 마지막 오르막구간에서

그는 나와의 거리를 50여미터 정도로 벌리며 스퍼트를 계속하고 있었다.


2002/11/14

lonely R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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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하프참가후기】 이제 나도 와인 마시며 푹 쉬고 싶다.(2)


◑ 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달리나?(2)

 - 나는 극한 상황(*고통)을 즐기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

 그러나 19km 지점의 마지막 오르막구간에서

그는 나와의 거리를 50여미터 정도로 벌리며 스퍼트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로가 오른쪽으로 꺾이며 마지막 언덕을 넘어서면서부터

나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본다.

그와의 거리를  좁히긴 했으나 골인 아치가 300여미터 전방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시계를 볼 여유도 없었다.

최소한 28분대 진입이 예견되었다.

 

마지막 안간힘을 골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골인점 약 70~80미터전방에서 호흡이 잘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무호흡증!“ 이다.

 

연습도중 운동부하를 많이 걸 때 어쩌다 한번씩 느껴보긴 했으나

대회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속도를 줄이니 조금은 괜찮은 듯 했다.

이왕에 쓰러질 바에야 골인하고나 보자는 생각에

그냥 죽기 살기로 피니시 라인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누군가가 검푸 화이팅!" 외쳐준다. 검푸여총의 목소리였다.

 

전자매트를 통과하고 바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까지 풀코스/하프코스를 달린 후 골인점에서

바로 주저 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20여 년전 5,000m 레이스에서는 가끔 경험)

 

엎드려 헉헉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허리를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나는 가만히 있기를 원했다.

(*나중에 안 일지만 나를 일으켜 세우려든 사람은 대회 자원봉사자가 아닌 함께간 강호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호고수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한참 뒤 호흡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나의 마라톤 시계를 보니 “1시간 28분대”에서 멈춰 서있었다.

 

무언가를 이룩했다는 안도감이 나의 온몸에 전율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에 무호흡증까지 간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그 고통은 사라지고 순간적으로 희열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육체는 엄청 피로가 엄습해 왔다.

잔디밭에 벌렁 누워 한동안 쉬고 있었다.

 

“아무리 도전이 아름답다지만 이런 도전은 이제 그만 해야지”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하며,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는 영남대 컴퍼스를 서서히 걸어 나왔다.

 

◑ 기록 도전은 이제 그만             


브레이크가 파열된 듯이 달려온 나의 하반기 마라톤 기록갱신의 행진은

9월말부터 시작해 11월10일 그 종착역에 도착했다.

 

* 09/29 통일마라톤 : 춘천대비 나만의 풀코스 인터벌 훈련(*3:51:08)

* 10/20 춘천마라톤 : 풀 최고기록 수립(*3:23:14)/ 종전기록 6분10초 단축

* 11/03 중앙마라톤 : 하프 기록 갱신(*1:31:22)/ 종전기록 1분 46초 단축

* 11/10 경산마라톤 : 하프최고기록 수립(*1:28:21)/ 종전기록 3분 1초 단축

 

사실 이번 경산마라톤은 원래 계획에 없었다.

중앙에서 30분 벽을 깨겠다며 도전했으나

초반에 욕심을 부려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경산에서는 적은 참가자로 인한 주로의 막힘이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도 날씨와 코스가 최근 참가한 여느 대회 때보다 좋았다.

 

이제 나의 마라톤기록 도전은 중지하고 긴 겨울잠으로 들어가야겠다.

아마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하프/풀 기록 도전은 하지 않음은 물론

대회 참가 여부도 신중히 고려하겠다.

(*동아에서 한판 붙자는 등 나를 부추 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젠 와인을 마시며 좀 쉬고 싶다.


거의 일년 내내 휴일이면 가정을 내팽개치고

산으로 들로 강가로 뛰어 다니느라 집안 일에 불성실한 면도 없잖아 많았다.

내가 좋다면 좋을 대로하라며 이해를 해준 내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혹독한 레이스에도 잘 견뎌 준 내 몸뚱이 한테도 감사를.......

  

이제 이번 경산마라톤을 끝으로 나의 2002년 마라톤사업을 종료하고

그 동안 못 다한 여행과 독서, 또한 나만의 오케스트라인 기타의 선율에 젖으며

아쉽긴 하나 멀어져 가는 가을을 보내고

다시 하얀 겨울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끝으로 나의 하프 개인최고기록 수립 등

마라톤 관련 모든 것은 검푸 여러분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잘 알고있다.

나는 검푸 여러분들을 내 가족 이상으로 사랑한다.

 

일주일만 안보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건 왜일까?.


감사합니다.


2002/11/14

 

더 고독해지고 싶은 밤

검푸의 “고독한 러너”  이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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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성명 : 이은수(만 52세)/* 닉네임 : 고독한 러너 

   - 직무 : 클럽 훈련담당/ 분당마라톤 홍보담당

  - 마라톤경력 : 약 4년(*달리기 입문 '83. 3월)

                      2002/04/15  제106회 보스턴마라톤 완주를 비롯

                      풀코스 12회,  하프 14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