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5 발칸 7국 & 동유럽 6국/보스니아(BOSNIA)

(여행 18일차) 사라예보의 어제와 오늘- 전쟁과 평화


    (여행 18일차) 

 

사라예보의 어제와 오늘


- 전쟁과 평화 -






(*자료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사라예보/ Sarajevo(*인구 369,534명/추정 2013)는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이 있는 지역이다.


Sarajevo의 어원은 터키어로 <사라이·오와스〉‘궁전이 있는 평야’.

원래는 '우흘보스나'라고 불려진 작은 마을이었다.

1461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세원진 이래 올해로 555년이 된다.


잘 아시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고

1984년 제14회 동계올림픽이 이곳에서 열였으며

2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여행은 항상 좋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니기에

오늘은 근대 전쟁사에서 가장 잔학한 보스니아 내전의 대해서 알아본 다음 ,

전쟁의 아픔을 겪고 다시 일어선 사라예보 올드타운를 둘러 보기로 한다.




*포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사라예보 교외 그라비치아(사진자료: 위키피디아)



보스니아 내전



* 내전기간 : 1992.4월~ 1995.12월(3년 8개월)

* 인명피해 : 20만명 이상 사망, 230만명의 난민 발생

'보스니아 내전'은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민족적, 종교적 반목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보스니아는 ‘유럽의 킬링필드로 불렸다.

1991년 보스니아 내의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연대하여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국민투표(1992.3월)에서 확정, 1992년 4월 미국과 EU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자,

세르비아계의 반발로 보스니아는 본격적인 내전상태에 돌입했다.


이후 3년간 내전에서 20만 명 이상의 희생자와 230만 명의 난민 초래한 채,

1995.12월, 미국의 중재로 데이튼(Dayton)에서 맺은 평화 협정 체결로 내전이 종결되긴 했으나

내전의 후유증이 계속되며 민족 간, 종교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자료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포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사라예보 도심(사진자료: 위키피디아)



# 사라예보 포위전(Opsada Sarajeva 오프스카 사라예바)



세르비아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의 스릅시카 공화국군에 의해

사라예보 도시 전체가 3년 넘게(92.4.6~96.2.29/ 1,425일) 봉쇄된 사건으로

현대 전쟁사에서도 매우 희귀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포위전에서 보스니아측의 민간인 5,434명을 포함한 13,952명이 사망,

세르비아 민병대의 사망자는 2,241명....



*사라예보 포위 당시 땔감을 마련하는 사라예보 주민들..(사진자료: 위키피디아)



# 사라예보 생명의 터널(Tunnel of Life /Civil War/ Underground Passag)


   이곳은 93~95년 내전당시 사라예보 도심 전체가 세르비아 군에게 포위되어

   사라예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내전당시 물과 전기, 식량 등이 전혀 공급되지 않는 상황 발생,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맨손으로 땅굴을 파고 또 파서 760미터를 팠다.
   사라에보 공항 활주로 지하에 있는 사라예보 사람들의 생명의 줄이다 




# 인종청소-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Genocid u Srebrenici)



"이슬람계의 씨를 말려라!"
 세르비아계의 목적은 - 인종청소!




* 스레브레니차 학살 묘지( 사진자료: 위키피디어)


1995.7월에 보스니아 내전중에 일어난 이 사건은
8천명(8,372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게한 대 학살 사건이다.

보스니아 '스레브니차' 지역에 살고있던 3만여명의 보스니아인들(이슬람교도)을 상대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살해했다.

살해당한 이들은 대부분 남자와 10대 소년들이었으며,
그 중 약 500명이 18세 미만이었고 여자들도 수 십명이나 기록되어있다.


이 집단학살을 주도한 사람은 세르비아계의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으로.

 그는 헤이그의 구 유고연방전범재판소(ICTP)에 기소됨.

이 사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집단 학살이었다.
국제 사법재판소는 학살로 인정했지만 세르비아측은 오리발로 불인정^^*


*96년 학살 매장된 시신 발굴 작업(사진라료 : 위키피디어)

2015.7월 스레브레니차 학살 20주년 기념식에
가해자측인 세르비아 총리가 참석했으나,
성난 군중들로 부터 돌과 물병세례를 받아 안경이 깨지는 봉변을 당했다.
(* 봉변 당해도 싸지... ㅉㅉㅉ)


 #추천영화(1)/ '그르바비차(Grbavica)'

   - 야시밀라 즈바니치 작품(2006년)/ 사라예보 출신 여류 감독.

   - 주연: 루나미 조빅과 마르야나 카라노비치

   - 보스나아 내전 영화(2006)/ 보스니아에서 제작

   - 2006년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 수상


# 추천영화(2)/ Welcome to Sarajevo

-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최초의 영화('97년).

실제 종군기자였던 마이클 니콜슨이 쓴 "나타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웰컴 투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전쟁의 참상을 전해주는 영화.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 보스니아 내전에 관심 있으시면 위 추천영화를 강추합니다.




* 전차 포격으로 불타고 있는 사라예보 의회건물(사진자료: 위키피디어)

- 내전 당시 사라예보에서 최고층 빌딍 인듯...(?)




* 세르비아의 포격으로 파괴된 보스니아 국립대 도서관 건물(자료출처: 위키피디어)




 


 

    

  # 올드 타운 경사진 곳에 위치한 '코바치 순교자 추모 공원'

(Martyrs' memorial cemetery Kovači in Sarajevo) 

     

# 대체왜, 누가 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 왜?

        1993~1995년 내전에서 이곳 사라예보 한 도시에서만 희생된 사람이

15,000명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작은 배낭에 카메라와 지도 한장, 물 한병 넣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걸어서 사라예보 올드 타운(스타리그라드)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이다.


밀라츠카 강의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서 언덕 배기로 올라갔다.

멋진 경치를 보는데는 높은 곳에 올라 가는 게 최고,

언덕에 올라서니 사라예보 올드타운은 물론

멀리 있는 신시가지와 산까지 시야에 파노라마로 펼쳐 졌다.


즐거움도 잠시 뿐....

언덕 바로 밑에는 하얀 돌 비석 수 천기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공원내에는 꽃을 들고 추모공원을 찾은 몇 몇 가족들도 보였다.

이곳이 바로 '코바치 추모 공원'이란 사실은 여행 후에 알았다.


이렇게 많은 비석들이 모두 내전 때 운명을 달리한 영령들의 흔적이란 말인가!

순간, 비석에 새겨진 숫자에 내 시선이 멈췄다.

이쪽 비석도 저쪽 비석에서도 특이한 것은 태어난 날은(년도)는 모두 다른데

죽은 년도는 모두가 93~ 95년으로 새겨져 있음에 놀라고 말았다.


하얀 돌비석과 마주하고 서있는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져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누가, 이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단 말인가?


 

    보스니아 내전?

 

- 보스니아 역사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전쟁으로 인해 피로 물들었던 땅이다.
오랜된 전쟁사는 차치하더라도

불과 20여년 전인 19924월부터 199512월까지 39개월 동안
내전으로 전체 인구
약 10%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여행 후 여행기 쓰면서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보스니아 내전은 다른 여는 전쟁과는 달리 국가간, 군인간의 전투가 아닌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웃과의 전쟁이라는 점이 다르다.

정치인들의 선동에 따라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평소 알고지내던 이웃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전쟁이라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로 인해 인종청소라는 말이 생겼던 땅이다

 

 


# 내전에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쪽은 보스니아 이슬람계 사람들이다.

추모공원 바로 뒷쪽에 이슬람의 모스크가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 니야스 코마리차/ NIJAZ  KOMARICA(1965~1993)

- 28세의 청춘이 여기에 묻히다 -


보스니아어를 잘 모르긴하나

조심스럽게 묘비에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봤더니 출생한 년도는 각기 다른데

      죽은 날은 같은 내전기간('92~ '95년)으로 되어 있음에 놀랐다. ㅉㅉㅉ

     

   

 


   # 영령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92~95년 내전으로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묘지를 둘러본 뒤, 필자는 전쟁의 참담함에 한동안 숙연해 지기도했다. ㅉㅉㅉ

 
 

 






# 이제부터 슬슬~ 사라예보 올드타운을 구경 좀 해보기로 하자.





 

 

      #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사라예보 구 시청사 건물, 현재 국립도서관....


       - 이 건물은 1894년 건축되어 오스트리아- 항가리 제국의 통치 시절 시청사로 사용하였으나,

         1949년부터 보스니아의 '국립도서관'으로 사용 중에...

        그러나 1992.8월 내전 때에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200만권 이상의 장서들이 소실되었으며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듯... ^^*

      


 



 

    # 이슬람의 모스크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

 

      오른쪽으로 보이는 개천은 밀라츠카 강....

      강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것 같다. 

      분당의 탄천 보다 훨~ 작은 개천이다.  ㅎㅎ



 

 

 

  #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 역사의 현장에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900만명을 죽게한 제1차 세계대전을 잉태한 밀야츠카강'라틴 다리'.

1914628일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되자

1차 대전이 발발되었던 역사의 진원지이다.


이 박물관과 다리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

 

 

 


 

 

   # 라틴다리/ Latin Bridge(Emperor's Bridge)& 밀라츠카 강


     -  규모로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란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킨

그 역사의 현장앞에 내가 서 있다.

   




 # 1914년 7월 12일자 이탈리아 신문 ‘Domenica del Corriere’ 에 실린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의 암살 장면.

   이 사건은 제1차 세계 대전 (1914-1918)의 시발점이 된다.

(*자료 출처 : 인터넷 검색)


세르비아계 극우파 일행이 황태자 부처를 1차로 암살을 기도,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황태자 부처가 탄 차량을 따르던 수행원들이 탄 차에서만 폭발,

많은 수행원들이 다쳐 병원에 후송되었다.

이때 황태자 부처는 수행원들의 위로차 병원으로 가는도 중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만약 If,

황태자 부처가 병원에 가지않아 피살되지 않았다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영국, 프랑스는 독일과 갈등 관계가 심각했다고 하는데... ㅉㅉ

역사나 정치에 문외한인 서생의 생각은

시기가 좀 늦춰 졌을지언정 세계대전은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 ㅎㅎ



 

 

   #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를 저격한 범인 - 세르비아계 청년 사진 외..

박물관 입구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있는 사진 자료!


     - 세르비아는 101년 전이나 근세에나 나쁜 짓만 찾아가면 하구먼... TTT ㅌㅌㅌ




 

 



#  이슬람과 카톨릭 그리고 그리스 정교가 공존하는 다문화의 시험장- 사라예보...




 

 

 


# 올드타운 최번화가  성당 근처....

 




 

 

 


 #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사라예보 올드타운 거리

 

   나는 지금 여행자의 신분으로

사라예보의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지만,
   20년 전 이 곳은

도심 전체를 세르비아계의 군인들이 완전 포위한 채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올지,

어느 건물 위에서 세르비아계 '스나이퍼'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던 곳이었다는 게 믿겨지질 않았다. ^^*

 


 

 

   # 올드타운 한 가운데 위치한 성당/ CATHEDRAL OF SACRED


     - 이 성당은 1889년 오스트리아- 항가리 제국 시절에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을 벤치 마킹해서

       고딕양식을 기초로 네오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성당 입구엔 교황님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필자가 가기 바로 직후인 2015.6.6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라예보를 방문한다는 플랑카드가 성당은 물론 시가지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다시는 아름다운 이땅에 동족상잔의 피 비린내나는 전쟁이 없는

오직 평화만 깃들기를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 옵나이다. "


"아~ 멘..."

 


 


# 그라드스 트르즈니차/ GRADSKA TRZNICA


 - 외형은 미술관이나 극장같은 이곳이 날시장이라는데 믿기질 않았다.

안에 들어 가보지 않았으니....  ㅉㅉㅉ




 

 


  

   # 사라예보 올드타운(스타리 그라드) - 골동품 거리

     

- 왼쪽의 하얀색으로 된 건물이 캬라반의 숙소였던 모리차 한( Morica 'han)

       이 건물은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2층에는 40여개의 룸이 있어, 약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1층은 상품 창고와 말과 낙타의 마굿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2층은 변호사 사무실로 1층은 가게, 레스토랑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





 

 

    # 올드타운에 있는 유명한 수공예품거리-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 언제나 많은 여행자와 시민들이 어울려 북적거리는 골목이기도 하다.

Tourist (i)가 여기 있는 줄 몰랐는데 사진보고 이제서야.....ㅎㅎㅎ

사진의 우측 아래 그린색 간판...

 

 

 

 


 


    # 올드타운의 바슈카르지아 광장(일명/ 비둘기 광장)에 있는 '세빌리 샘'

- 일종의 공동 우물로 오스만 제국 시절인 1891년에 설치 했다는데....

      -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 샘은 보이지 않는다. ^^*

 



 

 

 

    # 시민들의 대중교통 수단인 트램- 전차

  

    사진 보이는 트램은 이주 낡은 구형이지만 운행중인 대부분의 트램은 신형이다.

     사라예보를 떠나 오던 날, 올드타운의 성당 뒤쪽에서 사라예보 기차역까지 딱 한번 타봤다.


트램안에 탄 사람들중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았는데 중년 이상의 분들은 표정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20년전 끔찍했던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텐데....... ㅉㅉ



 

 

 
    # 반갑다. 딱정벌레~ 폭크스 바겐 VW 1300

 

      이 모델이면 60~70년대 생산된 차인데, 아직도 현직으로... 굴러 다니다니....

      검색해봤더니 비틀 구형은 1978년 단종된 모델! 공냉식이라 소리가 좀 요란 하긴하나

     1998년 뉴비틀이 나오기 전까지 포크스 바겐의 인기 모델로 활약을.......  

      너무, 반가워서 길가에 주차된 이녀석의 앞태와 뒤 태를 모두 담아봤다.   ^^*




 

# 밀라츠카 강변 주택가에 자리한 또 다른 이슬람 사원- 모스크

 





 

    # 밀라츠카 강 건너에 자리한 이슬람 모스크/ TSAR'S Mosque


보스니아는 400년이상 긴 세월 동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왔다.

     당시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등의 회유책으로

     많은 카톨릭/ 정교회 신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해, 현재 약 45%가 무슬림이다.

     따라서 보스니아는 가는 곳마다 모스크가 즐비하다...

 




 


   # 지도 한장 들고, 디카 하나 목에 걸고, 

     사라예보의 드넓은 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 

    나혼자서 밀라츠카 강을 건너 억덕배기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 드디어 멀리 신시가지와 산들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탁트인 뷰포인트가 바로 눈앞에....

 

 


 


 

 

 

    #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어 구름을 클로우즈업하기 위해

디카 모드를 바꿔서 찍어봤다.

    

 

 


 


     #  어느 호텔이 있는 억덕에 올라 서니 사라예보 시내가 한 눈에 펼쳐진다.

 

        와~우~~ 산이 많은 나라 답구먼...


사라예보 도시 전체를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에 온 기분이 들었다.

고층 아파트, 개천, 산 위에 촘촘히 붙어있는 집들....

빨간색 지붕만 뻬고는.... ㅎㅎ

 


 


  # 20년전 비극의 현장을 지켜봤을 밀라츠카강의 강물은

오늘도 소리없이 잔잔하기만 한데....


 

 

 

 

 

 

     # 석양에 물들고 있는 '밀라츠카강'

 

 

 

 


 


     # 석양밀라츠카강과 라틴다리

 






 


    # 사라예보 올드타운의 최 번화가 - 성당 앞


 필자가 묵었던 호스텔의 전광판에도 조명이 켜지고.....  ㅎㅎ


사라예보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길목이 좋은 어느 노천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치킨과 감자튀김, 병맥을 시켜놓고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망중한을 보냈다. ^^*

 




 

 

   # Avaz Twist Tower- 40층 규모


이 빌딩은 보스니아는 불론 발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사라예보 기차역 앞에 있다.

*40층/ 높이 176m/ 공사기간: 2006~2008. 8월
 

 

 

 

 


  # 사라예보  000성당 앞의 행인들...(동영상/ 시간차 촬영)


)


  여행자 수첩

    (여행 18일차)/ 5.23(토), 갬, 총성이 멎은 '사라예보', 나는 통곡한다.


   09:00~12:00 사라예보 올드타운 워킹투어

   15;30 호스텔 옮김(호스텔 해리스 - 호스텔 INN)

   17:00~19:00 휴식

   22:00 취침(*호스텔 INN  Luxury : 26마르카/ 12.80유로)



  소감


여행 가기 전에는

'보스니아'란 나라이름과 '사라예보'란 도시이름이 예쁘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그런데 왠지 좀 슬퍼 보이는 나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 -사라예보에 갔을 때는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어찌 그런 끔찍한 전쟁이 있었는지 도저히 믿기질 않았으며,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행 다녀 온 후,


너무나 슬퍼졌습니다.


며칠간 보스니아의 역사에 대해 공부 좀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두드리면 모든 자료가 쏟아져 나오는데

굳이 일일히 나열하는 것은 그만큼 제가 보스니아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입죠.


보스니아는

지정학적으로 동/서로마의 분기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 여러 강대국들의 지배와

근세에는 얼키고 설켜 꼬일대로 꼬인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불과 20년전 내전에서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까지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명사회에서 우째 이런 끔직한 일이....

정녕, 지구상에서 전쟁을 완전히 추방할 수는 없단말인가!....ㅉㅉ



장문의 글을 읽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다음엔 보스니아의 보석같은 소도시- '모스타르'로 ...

^^*^^